신문을 보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일반 독자들의 투고로 이루어지는 그 공간에서 시선을 끈 글자들..
노숙인 위한 잡지 창간을 위하여
(최준영, 한겨레 10월 9일자.)
무슨 소릴까? 노숙인을 주독자로 타겟을 잡는 잡지 말하는 건가? 아님 잘 빠진 노숙인들이 모델로 등장하는 알찬 카달로그로 채울 잡지를 말하나???
아니였다. 노숙인에게 잡지의 판매권을 주어 그들의 생계를 돕는 잡지를 창간하겠다는 거였다. 노숙인들에게 식사나 대접하는 기존 봉사활동과는 달리 '자활'에 초점을 맞춘 게 산뜻하다.
영국에선 노숙인이 "워킹! 낫 베깅!" (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야!)이라고 써진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빅이슈>라는 잡지를 팔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도 그들이 파는 잡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산다고.
영화 '원스'에서 <빅이슈>를 들고 있는 모습(출처 Daum 영화)
희망차게 잡지를 팔고 있는 영국의 노숙인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동시에 내가 아는 노숙인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난 추석, 나는 노숙인을 위한 특별배식봉사에 참여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잔치음식을 장만했드랬다. 그날의 메뉴는 불고기, 오징어초무침, 잡채, 산적, 미역국, 송편 ....사정상 미처 배식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늦은 밤 돌아가는 길 영등포역에 멈춰선 버스안에서 배식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난 노숙인들이 특별배식에 신이 나서 한달음에 달려가 긴~긴~~ 줄이 길지 않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그들은 우리가 장만한 음식들을 맛있게 허겁지겁 쥐 눈 감추듯 해치워 버리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딱히 생각한 건 아니고 당연히 그러리라 여겼다. 내가 상상한대로의 자연스런 수순을 밟으며 흐뭇함과 보람을 만끽하려는 찰나,
아뿔싸.
배식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래서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부끄러움으로 인한 알싸한 당혹감이 확 올라왔다. 버스가 영등포역에서 멀어져 한참을 달리는 동안에도 그 당혹감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배식을 받기 위한 노숙인들 줄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란 말이야. 차례가 된 맨 앞에 서 있는 노숙인을 배식대로 도우미가 안내하려 하자 우리의 노숙인, 한달음에 배식대로 달려가지 않고 무진 시간 주저한다. 도우미가 손을 잡아 끌자 그제서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
염 치
그것이었다. 적절한 단어인진 모르겠으나, 그 노숙인은 분명 그것을 차리고 있었다.
'뭐야..'
노숙인에게 일방적으로 둘러놓은 편견이 철저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저이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확인한 그 순간, 이번엔 속상함이 가슴 그득 차오른다. '왜 그러고 살아요.. 왜..'
하긴 그러고 살고 싶어서 그러고 사는 걸까.
노숙인이고자 해서 노숙인으로 존재하는 노숙인이 있을 리 없다.
노숙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일자리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건강도 안좋고 신용상태가 엉망인 그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나도 '인간'이야 라고 염치를 맘껏 드러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들이 다시 '인간'다운 감성을 맘껏 누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 같은 사람의 시선을 교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하다.
<빅이슈>는 현재 영국의 주요 도시들은 물론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케냐, 남아공 등 28개국에서 발행돼 현지 노숙인을 위한 자활사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잡지를 판 수입이 그들이 사회로 다시 진입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줌은 당연하다.
글을 쓴 최준영 교수는 한국판 <빅이슈> 창간을 준비 중에 있다.
성공해야만 한다. 사회 제 단체와 정당과 기업의 후원,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한국판 <빅이슈> 창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